Tuesday, February 9, 2016

[장영실 11회] 조선만의 천문 연구 프로젝트 그 시작



세종의 명으로 명나라의 앞선 천문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사신단에 합류했던 장영실은 함께 명을 받았던 장희제의 배신과 그를 제거하려는 사대부 세력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이 위기에서 장영실은 천문연구에 관심이 많은 명나라 황족 주태강을 만나게 되고 그의 천문 기구의 정상 작동을 도왔고 그를 구명하기 위해 명나라로 온 이천과 함께 정적들의 기습에서 주태강을 구하며 그의 신뢰를 얻었다.  


주태강은 장영실의 능력을 크게 인정했고 장영실의 안전을 물론이고 조선 사신단이 임무를 무사히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아울러 장영실은 주태강으로 부터 과거 원나라 시절부터 전해오던 천문 연구 자료를 받게 된다. 


이는 조선의 독자적 천문 연구를 위한 소중한 자료였다. 이런 장영실의 눈부신 성과와 대조적으로 장영실 제거에 일조했던 장희제는 양심과 장영실에 대한 시기심 사에 고민하다 죄인이 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장영실의 도움으로 조선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지만, 장영실에 대한 열등감은 그를 계속 괴롭혔다. 장희제로서는 노비 출신 장영실이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장영실과 장희제의 처지가 엇갈린 가운데 장영실은 사신단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명나라에서의 그의 활약은 상당한 포상이 예상되는 일이었다. 평소 장영실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던 세종은 장영실의 면천과 관리 등용을 명했다.


하지만 대신들의 반대가 상당했다. 평소 노비 출신 장영실이 임금과 가까이 지내는 것에 반대했던 대신들은 물론이고 그의 측근들조차 이에 반대했다. 도리어 대신들은 명나라에서 접근을 금하는 천문 관측소 사천대에 올랐던 장영실과 장희제를 비롯한 서운과 관리들이 죄를 물을 것을 주장했다. 대신들의 강력한 저항에도 세종은 장영실의 등용을 강행하려 했지만, 장영실의 조력자 이천조차 대신들의 주장을 따를 것을 세종에 간언했다. 이천으로서는 자칫, 장영실의 면천과 관리 등용을 강행할 경우 이에 대한 역풍이 상당할 것을 우려했다. 2보 전진을 위하 1보 후퇴였다.


결국, 장영실은 장형에 처해졌고 노비 신분은 여전했다. 대신 세종은 장영실에게 은밀히 조선의 천문 관측소를 설치하고 천문 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을 명했다. 이천 역시 서운관의 뜻있는 관리들과 힘을 합쳤다. 그곳에서 장영실은 조선의 간의와 관측기구를 만들어냈다. 이는 중국의 역법에 의존해야 했던 조선의 도자적 역법을 만들고 천체관측 등의 표준을 만들기 위한 첫 발걸음이었다. 장영실은 그 중심에 있었다. 


이렇게 장영실은 역사의 중심 인물로 자리했지만, 그를 향한 양반 사대부들의 시기와 견제는 한층 더 강해졌다. 특히, 격물 즉, 과학 진흥에 관심이 큰 세종의 행보에 반감이 있던 양반 사대부들의 반발은 더 극심했다. 사대를 하는 명나라의 비위를 거스를 수 있는 이 행보가 조선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고 노비 출신 장영실의 중용은 신분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들의 움직임은 조직적인 반대로 더 확대됐다. 


세종은 이런 움직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들을 힘으로 누르기보다는 과학 연구의 성과를 통해 설득하려 했다. 마침 상왕으로 물러나 그를 배후에서 돕던 태종 이방원의 승하는 이런 그의 생각을 더 강하게 했다. 하지만 대신들은 세종의 뜻과는 달리 성리학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는 세종이 추진하는 천문 프로젝트의 중심, 장영실에 대한 공격이 더 극심해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그를 돕는 소현옹주와의 로멘스가 본격화된다면 장영실은 더 큰 어려움에 처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어려움에도 장영실은 지원하는 세종의 뜻은 확고하고 장영실 또한 천문연구에 대한 의지가 강한 상황임을 고려하면 조선만의 천문 연구는 그 속도를 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백성들의 삶을 보다 더 윤택하게 하려는 세종의 의지는 점점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그에 비례해 더 극심해질 반대세력들의 저항은 세종과 장영실이 가고자 하는 길에 큰 장애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조선만의 천문 프로젝트 진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


사진, 글 : 심종열

Monday, February 8, 2016

[Photos] Korea variegated baby party table






South Korea passes this season came in the spring lichun coming New Year, but still in the depths of winter, New Year's Day to New Year's pledge again, coming up with great significance in many ways. Today I tried to fill the posts in this New Year's holiday and matching colors.


photos of the day went to the birthday party of friends baby. We gave mingling of traditional New Year colors are too good.













The more variegated colors that look good, you feel good. I feel as if a breeze to greet everyone a happy New Year with one another.




Photos, text: Sim jongyul

Friday, February 5, 2016

[Jeju travel] Suwolbong, stacked layers of volcanic debris layer signs of aging






In nature there are many works of great value Jeju.
Articles that can meet the works of such nature in the places where you can feel pleasure only in Jeju.
Situated on the west coast of Jeju in which suwolbong, and volcanic debris layer is a sign of their long years condensed in one place here.


It is made of hardened deposits of volcanic debris top of each other stacked layers and lava coastline top of each other,
Traces of the colonial period to the painful history here was where the various scenes together.
It was a mysterious feeling to see all around.









Through the small observatory I was able to meet a coastline full of volcanic rocks.

The white foam of waves causing volcanic rocks and black forms had a strange contrast.











I met with ash deposits that can not even grasp the passage of time.
I saw the famous writer and art.

These deposits have been located and continue along the coast.








There were also signs of a painful history.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was made to protect the coast and shelter is located on one side.

The fact that this wonderful natural scenery that was damaged by war signs antakkawot.












In addition to the nearby observatory iteotneundeyo to meet a larger floor area of debris.
Add to the picture was about the hard time.
It was just amazing that you can see up close the creation of such a nature.


The mystery of suwolbong moved a step back and find the views of other tricks.



Photos, text: Sim jongyul 

Thursday, February 4, 2016

[장영실 9, 10회] 계속되는 생사의 고비, 멈춤 없는 신기술 열망





태종과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세종으로부터 재주를 인정받은 장영실이었지만, 노비의 신분은 벗을 수 없는 굴레였다. 하지만 장영실은 이 굴레에서 벗어나려 애쓰기 보다 자신의 능력을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쓰기로 결심했다. 그는 맞은 봐 소임에 온 힘을 다했다. 


이런 장영실을 신뢰하고 있던 세종은 그에게 큰 임무를 맡겼다. 그는 서운관의 책임자 장희제와 더불어 명나라 사신단에 참가해 명나라의 앞선 천문 기술을 보고 배우도록 했다. 세종은 이를 바탕으로 조선만의 천문관측 기술을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조선의 역법을 만들려 했다. 이전 중국의 역법에 의존한 천문관측이 나라 실정과 맞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한 세종의 마음이 담긴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큰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명나라는 천문기술의 대외 유출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특히, 장영실과 장희제가 살펴야 하는 천문대는 출입 자체가 원천 봉쇄된 곳으로 출입이 발각될 경우 목숨까지 위태로운 일이었다. 자칫 외교적 문제로도 비화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장영실로서는 꿈에 그리던 명나라 행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자신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었다. 


이런 위험과 더불어 장영실에 대한 조정 대신들의 극심한 견제 또한 그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성리학을 기본 이념으로 하는 조선에서 노비 신분인 장영실의 왕의 신임을 얻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하고 정부기관에 소속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세종이 장영실의 능력을 높이 사 그를 면천시키고자 하는 계획까지 알려지면서 반발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여기에 명나라에 대한 사대관계 유지를 외교정책의 중요 골자로 하고 있던 조선에 있어 명나라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는 독자적 천문연구와 조선만의 역법을 만들는 일은 조정대신들에게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세종의 그 프로젝트의 중심에 있었던 장영실에 대한 조정대신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만약 장영실이 면천되고 조정의 요직에 등용된다면 양반 사대부들 전체에도 큰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이는 세종의 격물을 중심하는 실용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규합시키고 조직적인 저항을 불러왔다. 그들은 세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기도 했고 거사를 모의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나라의 기틀이 잡혀가던 조선에 또 다른 위험요인이었다. 세종은 이런 움직임을 알고 있었지만, 반대파들에 대한 숙청보다는 정책의 성공을 통해 이들을 설득하려 했다. 장영실의 명나라 행은 세종에게는 중요한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세종의 큰 기대속에 명나라를 사진단에 참여한 장영실이었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명나라 천문대를 몰래 살피려는 계획은 명나라 조정의 권력암퉁에 휘말리며 좌절됐고 평소 그를 시기하던 장희제의 배신으로 장영실은 큰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장영실은 기대했던 중국 천문 관측장비가 실물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위험에서 벗어난 장영실이었지만, 그의 안전이 보장된 건 아니었다. 장영실은 그를 위험에서 구해준 명나라 황제의 측근 주태강의 저택에 갇히는 처지가 됐다. 그곳에서 장영실은 수 백년전 소실된 것으로 알려진 수운의상대를 다시 제작하는 현장을 발견하게 된다. 주태강은 장영실에게 수운의상대의 제작을 완성할 것을 명했다. 장영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장영실은 위기를 긍정적 사고로 극복했다. 장영실은 작업과정에서 천문관측 기구의 제작 비밀을 알게 되는 성과를 거뒀다. 장영실의 손길로 수운의상대는 제 모습을 찾아갔다. 장영실의 재능에 주태강 역시 탐복하며 그를 도왔다. 하지만 장영실에 대한 위험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장영실 제거에 실패한 장희제는 그와 결탁한 주태강의 정적인 환관 윤봉의 명에 따라 장영실과 주태강을 암살하기 위해 그의 저택을 찾았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이루어지 않았고 장희제는 오히려 장영실과 함께 수운의상대 제작을 하게됐다. 장영실은 장희제의 배신에 분노했지만, 당장 위험을 넘어서기 위해 그의 손을 잡았다. 장희제 역시 그와 장영실에 대한 세종의 신뢰와 장영실을 제거해야 하는 또 다른 임무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수운의상대 제작에 열중했다. 


이들의 노력으로 수운의상대는 완성단계가 들어갔다. 마침 세종의 친서가 주태강에 전달됐고 주태강은 약속대로 장영실과 장희제를 조선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다. 장영실은 조선만의 천문관측 기구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으로 조선으로 향할 수 있게 됐지만, 주태강을 제거하려는 명나라 환관 윤봉의 계략에 장영실 일행은 다시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다시 커졌다. 게다가 장희제 역시 나쁜 마음을 완전히 접지 않고 있다는 점은 아직 장영실의 조선행이 쉽지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 


장영실이 세종의 뜻에 따라 조선으로 돌아가 조선만의 천문 관측기술 발전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아직은 그에 대한 검은 그림자가 완전히 걷히지 않고 있다. 


사진. 글 : 심종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