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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anuary 18, 2016

[장영실 5, 6회] 충녕 대군과의 만남, 또 다른 위기의 시작








부친 장성휘의 죽음과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명나라행의 실패로 실의에 빠진 장영실은 부친인 장성휘의 절친한 벗이었던 이천과 한양으로 향하게 된다. 관노의 신분이었던 장영실로서는 자신의 명나라행을 막은 이천의 처분에 따라 자신의 거취가 결정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장영실은 한양으로 가는 도중 수 차례 도망갈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천의 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백성들을 사랑하는 그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그 마음을 접었다. 이천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바뀌는 혼란기에 자신의 가문이 조선 태조 이성계 의해 멸문되다시피 한 아픔이 있었다. 누구보다 조선 왕조에 대한 증오심이 큰 그였다. 이천은 그 마음을 억누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조선 건국에 힘을 보탰던 인물이었다. 아울러 이천은 훗날 세종대왕이 되는 세자 충녕대군와 막역한 사이였다. 


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충녕대군은 천문에 능통한 학사 장성휘를 곁에 두고 싶어 했다. 이천은 충녕대군의 명에 따라 장성휘를 설득하기 위해 그의 본가인 동래를 찾았었다. 하지만 장성휘가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뜻을 이룰 수 있었다. 대신 이천은 그의 아들 장영실의 재주를 눈여겨보고 당장의 속 마음을 숨기긴 했지만, 그의 조력자가 되기로 했다. 장영실은 그가 양반임을 들어 적대시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와 허물없는 사이가 됐다.








이천은 장영실의 재주를 활용하기 위해 그를 서운관의 관노로 편입시켰다. 아울러 장영실에게 천문석각의 비밀에 대해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마침 조정에서는 고려왕조의 부활을 꿈꾸는 세력들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긴장하고 있었다. 반 조선 세력은 가뭄과 기근이 이어지는 흉흉해진 민심을 등에 업고 정변을 꾀하고 있었다. 


이미 조정 내 상당수 인사들이 이에 가담되어 있었다. 그들은 천문석각에 고려 왕조의 부활을 암시하는 표식을 해두었고 이를 반정의 또 다른 명분으로 삼으려 했다. 당시만 해도 천체의 여러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보다는 과거 중국의 고서나 역학 등에 의존해 해석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반정 세력은 천문현상을 조선 왕조가 하늘의 뜻을 저버린 결과로 해석하며 이를 바탕으로 백성들을 선동하는 괴문서를 퍼뜨렸다. 이는 신생국가 조선에 큰 위협이었다. 


이 과정에서 천문석각의 비밀에 접근하는 이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으면서 위기감은 더 커졌다. 이천은 장영실의 천문지식을 이 비밀을 푸는 데 활용하고자 했다. 장영실은 천문석각에서 왕을 뜻하는 별자리가 따르게 표시되었음을 발견했다. 장영실은 서운관내 이상 기류를 감지하는 한 편 과학 현상을 객관적으로 연구하지 않은 모습에도 의문을 표시했다. 


이런 장영실에 반정세력은 그를 납치하려는 시도를 했고 장영실은 다시 한번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천의 도움으로 이를 벗어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장영실을 통해 천문석각의 비밀을 풀어낸 이천은 배후세력에 대해 알고 있는 석공을 찾았다.


하지만 그 석공을 노리는 이들이 또 있었다. 세자 충녕대군은 물론이고 반정 세력들도 그가 필요했다. 충녕대군이 가장 먼저 석공을 만났지만, 그가 자객의 화살에 목숨을 잃으면서 천문석각의 진짜 비밀은 다시 묻히고 말았다. 그를 만났던 충녕대군에게도 자객의 화살이 향했지만, 때마침 나타난 이천과 장영실의 도움으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장영실은 자신이 부상 당하는 와중에도 충녕대군을 위기에서 구하며 그와의 첫 만남을 가졌다. 이 와중에 석공은 죽어가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또 다른 발전을 예고했다. 


천문석각의 진짜 비밀이 미궁에 빠진 사이, 반정 세력들은 자신들을 향한 감시가 심해짐을 느끼고 정변 일자를 앞당기려했다. 그들은 왕권 강화정책을 더 공고히 하려는 태종에 반감을 가지고 있엇던 사대부 세력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병행하며 세력을 키웠다. 


반정의 기운이 무르익어가는 위기 상화에서 임금 태종은 천문석각의 비밀에 접근하려는 세자를 멀리하는 모습을 보이는 한 편 갑작스런 선위 의사를 밝히며 조정을 뒤흔들었다. 한편으로 태종은 세자를 흔들려는 세력들에 대한 강한 경고 메세지를 보내며 왕권 강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출하기도 했다.


이런 태종의 행동에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 태종은 이미 반정 세력들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는 천문석각의 비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장영실은 천문석각의 비밀에 대해 좀 더 알고자 참고했던 부친 장성휘의 서책의 저자가 태종이었다. 태종은 이미 천문석각에서 왕의 별자리에 이상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를 빌미로 반정 세력들이 규합하고 정변을 시도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오히려 태종은 이를 기회로 고려 잔존세력과 왕권강화에 반하는 세력들의 동시 숙청을 하려했다. 


이런 태종의 측근에는 고려 잔존세력의 중심 인물이었던 장희제가 있었다. 장희제는 천문석각 석공을 그의 화살로 살해하고 그와 만나는 충녕대군에도 화살을 날렸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태종의 명을 받아 반정세력에 침투한 이중 첩자였다. 그를 통해 반정 세력을 면면을 파악한 태종은 대규모 숙청을 준비했다. 


이렇게 조정에 큰 태풍이 몰아칠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장영실은 혼상을 만드는 재주를 활용해 명나라로 도망칠 기회를 다시 잡았다. 그에 대한 감시가 허술한 상황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를 신뢰하는 이천과 자신의 의견에 경청하는 세자 충녕대군과의 만남은 그의 결심을 흔들리게 했다. 또한, 급변하는 정세 역시 그의 명나라행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커졌다.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 속에 장영실은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은 장영실, 그의 선택은 무엇일지 그의 재주와 능력이 발휘될 수 무대가 어디 일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 글 : 심종열

Tuesday, January 12, 2016

[장영실 3, 4회] 거대한 시대 흐름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장영실


갖은 설움 속에 유년기를 보냈던 장영실은 청년이 되어서도 노비라는 신분의 굴레 속에 고통받고 있었다. 그는 타고난 손재주와 천문을 읽어내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지만, 어디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었다. 


장영실은 노비로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서 자신만의 천문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장영실은 그의 절친과 함께 숲속에 비밀 움막을 짓고 연구 성과물들을 기록했다. 이는 그의 부친과의 약속이기도 했다. 나름 큰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장영실은 자신의 모친이 억울하게 군관에게 죽임을 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아들의 천재성을 발휘할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하며 그를 애써 외면하는 부친과 부자의 정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장영실은 그럴수록 비밀 연구에 매진했다. 연구의 성과물인 혼상을 명나라와 일본을 오가는 상인에 팔아 그 대가로 명나라로 밀항할 계획을 세웠다. 마침 그를 다시 찾은 부친 역시 아들의 계획을 적극 도왔다. 장영실의 부친은 아들이 더는 노비로서 조선에서 억압받으며 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장영실의 부친은 지병으로 자신의 삶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아들이 하루라도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했다. 







부친의 지원에 힘을 얻은 장영실은 그의 수상한 행동에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 있던 군관들의 방해와 박해에도 그들의 눈을 피해 천체와 시간의 흐름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천문장치인 혼상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그의 명나라 행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것을 의미했다. 장영실은 그동안 모친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자신을 쉼 없이 괴롭히던 군관에 통쾌한 복수를 하며 명나라로 가는 상선에 오를 수 있었다. 


그의 지긋지긋한 노비생활의 끝이 보였다. 하지만 조선의 정치 상황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마침 천문연구에 관심이 많은 세자 충녕대군의 측근인 이천이 장영실의 부친 장성휘를 찾았다. 충녕 대군은 천문연구에 있어 최고 과학자인 장성휘가 필요했다. 이천은 충녕대군의 명을 받아 장성휘를 도성으로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장성휘는 충녕대군과 이천의 바람과 달리 그의 생을 마감했다. 장성휘는 임종 직전 그의 아들 장영실의 비범한 재주와 혼상 제작 사실을 그의 절친이기도 한 이천에 털어놓았다. 이천은 즉시 명나라로 떠나가는 장영실을 붙잡았고 그는 동래현의 관노가 아닌 도성의 관노가 되는 처지에 놓였다. 그의 능력을 알아보려는 이천의 의도에 따른 일이었다. 장영실은 명나라행의 좌절과 더불어 부친의 사망을 함께 확인하며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이렇게 장영실이 좌절에 빠져있을 때 조선 조정은 민심 이반에 고심하고 있었다. 수 년간 계속되는 가뭄과 이로 인한 흉년이 불러온 기근은 백성들의 삶을 나날이 비참하게 했다. 힘든 삶을 견디지 못한 백성들 중에는 도적이 되거나 약탈을 일삼는 이들이 늘어갔다. 이는 조정 내외에서 자리하고 있는 고려왕조 추종 세력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천문과 기상 등을 관장하는 서운관의 관리들까지 이 세력에 연루되면서 그들에 의해 가뭄과 기근이 고려왕실의 왕위를 찬탈한 조선에 대한 하늘의 징벌이고 고려 왕조의 부활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는 유언비어가 급속히 유포되기 시작했다. 서운관의 관리들은 가뭄 등 기상 이변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명나라 서적과 주역 등에 의존하며 본질을 흐리고 있었다. 


이런 서운관에 세자 충녕은 의문을 제기하며 과학적인 천문 연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는 고려왕실 부활을 꿈꾸는 세력들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유학적 사고를 강조하는 대신들에게는 왕권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행동으로 여겨졌다. 충녕으로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막아내기 위해서도 천문에 능한 인물이 절실했다. 한양으로 향하는 장영실은 충녕대군에게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결국, 장영실은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왕조 교체기 혼란과 변화의 시기에 그 중심에 서게됐다. 장영실로서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맞서 싸우는 것 외에 방법이 없는 상황이 됐지만, 자신의 능력을 떨칠 기회도 함께 찾아온 셈이 됐다. 하지만 아직 노비 신분이 그에게는 앞으로 일들도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움의 연속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글 : 심종열 

Tuesday, January 5, 2016

[장영실 1, 2회] 힘겨운 노비의 삶, 그 안에서 피어나는 희망


장영실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물건을 만드는 손재주가 뛰어났다. 여기에 천문에 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이는 그의 부친의 영향이 컸다. 장영실은 부친 장성휘는 고려 때부터 기술직 관리로 능력을 인정받았고 천문과 관련한 일을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그는 천문 과학자였다. 왕조가 바뀌었어도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장성휘는 고려가 이후 등장한 조선왕조에 협력하고 않았고 방랑자의 삶을 살았다. 그 과정에서 기생있었던 장영실의 모친을 만났고 장영실을 낳았다. 분명 장영실은 양반의 자손이었지만, 부모 중 한명이라도 천민이면 그 자녀 역시 천민이 되는 제도에 얽매여 관청의 노비로 살아야 했다. 당시 노비는 인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유물이나 재산으로 취급됐다. 그런 노비에게 일 외에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린 장영실은 이런 현실에서 하늘의 별자리를 지켜보는 것을 즐겼고 자신의 방법으로 이것저것 만드는 것을 즐겨했다. 이런 장영실에 부친과의 만남은 더 큰 꿈을 꾸는 계기가 됐다. 그의 부친 장성휘는 장영실의 재능을 읽고 천문과 관련한 서적을 그에게 주었다. 장성휘는 노비 신분인 장영실이 그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음을 알았지만, 그의 희망을 잃게 할 수 없었다.






장성휘는 가문의 제사에 장영실과 함께 가면서 장영실이 장씨 가문의 일원임을 알렸고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부자의 정을 나누기도 했다. 모친과 함께 노비로서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던 장영실로서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장영실은 부친을 통해 천문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 가지게 됐고 과학자로서의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장영실이 희망을 키워가고 있을 즈음 조선의 궁궐은 깊은 근심에 쌓여 있었다. 형제와 개국공신들과의 피를 부르는 치열한 권력 암투를 이겨내고 왕위에 오른 조선 제3대왕 태종 이방원은 왕위 찬탈자라는 오명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던지고 싶었다. 아직도 고려왕조를 따르는 세력이 상당수 존재하는 상황에서 왕권 확립이 시급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태종은 천문현상을 이용해 왕권의 존엄함을 세우려 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일식과 월식을 사전에 예측하고 그 시간 하늘에 제를 올릴 수 있다면 하늘의 이치를 헤아리는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마침 태종이 왕위에 오른 직후 일식일자가 천문과 기상 풍수를 관장하는 관청인 서운관에서 예측됐다. 태종은 일식일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서운관의 예측은 빗나갔다. 일시는 일치했지만, 일식의 장소는 조선의 남쪽에 국한됐다. 태종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 장영실과 그의 부친 장성휘는 그들의 고향이 부산 동래에서 일식을 관측하고 있었다. 장성휘는 전국 각지를 돌며 천문을 연구했고 그 과정에서 일식의 일시와 장소를 유추했다. 그는 왕이 있는 도성에서 일식을 볼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장영실은 이런 부친의 모습에서 또 한 번 경외감을 가지게 됐다. 


이들과 함께 일식을 목격한 장성휘의 절친 서운관 관리 이천은 이 사실을 태종에게 알렸고 장성휘가 예측한 월식일도 함께 알려졌다. 장성휘의 예측은 서운관의 예측과 차이가 있었다. 태종은 장성휘의 예측을 따르기로 하고 제를 준비했다. 당시 조선의 천문연구는 중국의 기록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이는 우리 실정에 맞지 않은 부분도 상당수 존재했다. 태종은 이런 행태에 불을 가지고 있었다. 태종이 장성휘의 일식 예측을 따르기로 한 건 일식 예측에 실패한 서운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것과 더불어 자주적 천문연구에 대한 갈망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태종의 기대와 달리 장성휘의 월식 예측은 들어맞지 않았다. 그가 남겨준 자료를 연구하다 월식일이 틀릴 수 있음을 알게된 장영실은 이를 알리려 했지만, 노비 신분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결국, 태종은 또 한번의 하늘의 버림을 받은 임금이 되면서 좌절해야 했다. 장영실 역시 노비의 신분으로 천문을 연구한 것을 이유로 모진 고초를 겪게 된다. 


장영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장영실은 더욱더 천문연구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청년이 되어서도 온갖 멸시와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노비의 삶은 힘겹기만 했지만, 장영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다양한 발명품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고 천문 연구도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분제 사회에서 최하층에 자리한 장영실이 꿈을 펼치기에 조선은 너무나 제약이 많았다. 


장영실은 외국으로 떠날 것을 소망했고 그 준비를 꾸준히 했다. 이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는 엄연히 노비 신분이었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는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장영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서 현실에서 벗어나야 했다. 특히, 천문 연구에 있어 선진국인 명나라는 그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장영실은 지인의 도움을 얻어 명나라로의 밀항을 계획했다. 그리고 그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청년 장영실에게는 희망을 지키고 키워나가기 위해 현실에서 탈출은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그를 옭아매고 있는 신분제의 장벽은 결코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장애물이었다. 장영실이 노비의 삶에서 벗어나 더 큰 꿈을 꿀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분명한 건 그가 떠나던 그렇지 않던 앞으로의 일들은 시련이 연속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진, 글 : 심종열